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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 규모 절반 줄었어도 시설 투자는 사수

HLB제약의 유상증자 조달 규모가 1,200억 원에서 609억 원으로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1차 발행가액이 주당 5,650원으로 확정되며 당초 예정가 1만 1,150원 대비 49.3% 낮게 책정된 결과다. 배경에는 모기업 HLB그룹의 간암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지 못한 여파가 있다.
HLB그룹의 간암 1차 치료제 후보인 리보세라닙·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은 세 번째 FDA 승인 거절(CRL·보완요구서한)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거절 사유가 약효나 안전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상 3상(CARES-310)에서 이 병용요법은 전체 생존기간 중앙값(mOS) 23.8개월을 기록해 대조군인 소라페닙(15.2개월)을 크게 앞섰다. FDA가 문제 삼은 것은 중국 파트너사인 항서제약의 생산 시설(cGMP) 적합성이었다.
이 악재로 HLB제약 주가는 지난달 중순 이틀 만에 50% 가까이 급락했고, 이후 발행가 산정 기준일까지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 조달 자금이 반토막 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550억 원 시설투자는 그대로, 운영자금만 대폭 삭감
조달 규모가 줄었지만 향남 신공장 건설 계획은 유지됐다. 정정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조달 자금 608억 원 가운데 시설자금으로 550억 원이 배정됐다. 반면 운영자금은 당초 계획에서 대폭 삭감돼 58억 원에 그쳤다. 회사는 실제 조달액이 부족할 경우 시설투자를 최우선으로 집행하겠다고 명시했다.
이런 결정의 근거는 현 생산 설비의 한계에 있다. 현재 남양주 공장은 1972년 준공돼 그린벨트 부지에 위치하고 있어 증·개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포장공정 가동률도 90%를 넘어 추가 생산 여력이 한계에 달한 상태다.
향남 신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생산능력은 기존 3억 정에서 최소 7억 정으로 2.3배 이상 늘어난다. 외주 생산(CMO) 의존도를 낮추면서 원가율을 약 2%포인트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FDA 중국 공장 문제가 역설적으로 한국 생산기지 가치 높여
HLB그룹이 중국 파트너사의 생산 시설 문제로 FDA 승인에 난항을 겪으면서, 안정적인 품질 관리(QC)와 cGMP 규격을 충족할 수 있는 한국 내 자체 생산 시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HLB제약이 자금 축소에도 향남 신공장 투자를 최우선으로 집행하는 데는, 향후 리보세라닙 등 핵심 신약의 글로벌 진출 시 한국 공장을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실제로 엘레바 테라퓨틱스(Elevar Therapeutics) 경영진은 중국 파트너사의 제조 시설 문제 해결과 함께, 미국이나 한국의 위탁생산(CMO) 시설을 활용하는 투트랙 생산 전략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미국 생물보안법 등 '탈중국 공급망 재편'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본업 성장세는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는 실질적 근거가 된다. HLB제약의 지난해 연결 매출은 2,056억 원으로 전년 대비 50% 늘며 처음으로 2,000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 1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89% 증가한 656억 원을 기록했다. 순환기·소화기·항생제 등 전문의약품 매출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의약품 유통사업도 30% 이상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R&D 자금이 58억 원으로 대폭 줄면서 연구개발 전략도 선택과 집중으로 재편됐다. 개량신약, 퍼스트제네릭,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장기지속형 주사제(SMEB) 플랫폼 개발 등 핵심 과제에 집중 투입된다. 장기지속형 비만치료제와 SMEB 플랫폼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제시됐으나, 구형 비만치료제 성분(리라글루타이드) 관련 국내 특허 취소 판결 등 기술적 견제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차세대 GLP-1 비만치료제(세마글루타이드 등)의 장기지속형 제형 개발로 전략을 선회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부의 제네릭 약가 인하에 대응해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추진과 개량신약을 통한 수익성 방어 계획도 병행한다. 조달 규모가 추가로 줄어들 경우 시설·개발 투자 시기를 조정하거나 축소할 수 있으며, 부족한 자금은 금융기관 차입이나 보유 자산 담보 제공 등으로 충당할 방침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생산 거점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 이번 결정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R&D 여력이 58억 원 수준으로 줄어든 것은 중장기 파이프라인 경쟁력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향남 공장을 기반으로 자사 생산 비중을 높이고 개량신약 등으로 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평가다.

BIOBOOK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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