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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5000만원으로 셀트리온 일군 서정진 초등학교 중퇴 외판원 최수부, 광동제약 창업

연탄을 나르던 소년과 경옥고 항아리를 지고 다니던 외판원이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지형을 바꿨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과 고(故) 최수부 광동제약 창업주 이야기다. 두 사람은 각각 2002년과 1963년 맨손으로 회사를 세워 연매출 4조원과 1조6407억원 규모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서 회장은 195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작은 연탄 가게를 운영했고 서 회장은 중학생 시절 학교가 끝나면 연탄을 배달했다. 등록금이 없어 고등학교 입학은 1년 늦어졌다.
건국대 산업공학과 재학 시절에는 택시를 몰아 학비를 벌었다. 24시간 택시를 운행하고 24시간 학교에 다니는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4.3만점에 4.18의 학점으로 과 수석을 차지했다.
1983년 삼성전기에 입사한 그는 한국생산성본부를 거쳐 34세에 대우자동차 최연소 임원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 40대 초반에 일자리를 잃었다.
실직한 서 회장은 2000년 대우 출신 동료 10여명과 자본금 5000만원으로 넥솔을 세웠고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초기 에이즈 백신 개발이 임상에서 좌절되자 바이오시밀러로 방향을 틀었고 2012년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내놨다. 램시마는 이듬해 유럽 허가를 받으며 글로벌 시장의 문을 열었다.
셀트리온은 2025년 매출 4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넘어서며 영업이익률 36%를 기록했다. 짐펜트라 등 신규 제품이 전체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했고 회사는 2026년 매출 목표로 5조3000억원을 제시했다. 서 회장은 "성공하고 싶은데 돈이 많으면 좀 쉬울 뿐이지 돈이 없어서 못 하는 건 아니다"라며 "도전하면 성공할 때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실패라는 단어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수부 광동제약 창업주의 출발점은 더 낮았다. 그는 1936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2세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학업은 초등학교에서 멈췄다.
광복 후 귀국한 그는 군 제대 뒤 고려인삼산업사에 들어가 3년간 경옥고 외판원으로 일했다. 이 시절 몸에 익힌 영업 감각을 밑천 삼아 1963년 서울 용산에서 광동제약을 세웠다. 회사는 1960년대 후반까지 가내수공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1973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우황청심원 제조 허가를 받았고 1989년 증시에 상장했다.
최 창업주는 '최씨 고집'으로 불릴 만큼 품질에 집착했다. 일흔이 넘어서도 우황 등 약재를 직접 골랐고 TV 광고에 직접 출연해 이를 알렸다. 1998년 외환위기로 부도 위기에 몰렸을 때는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살려낸 뒤 보유 주식 10만주를 직원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그는 생전 "시련은 산삼보다 더 좋은 보약"이라는 말을 남겼다.
위기 이후 승부수가 2001년 출시한 비타500이었다. 국내 첫 병 비타민 음료인 비타500은 출시 2년 만에 1억병이 팔리며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최 창업주는 2013년 7월 별세했고 외아들 최성원 회장이 경영을 이어받았다. 광동제약은 2024년 연결 기준 매출 1조6407억원을 기록했으며 전문의약품 비중을 늘리는 체질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두 사람의 궤적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학벌이나 자본 대신 밑바닥 영업 현장에서 사업의 기초를 쌓았고 외환위기라는 같은 시련을 창업과 재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연탄 배달과 경옥고 외판에서 출발한 두 기업은 현재 합산 매출 5조원을 넘는 한국 제약바이오의 축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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