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한국은 1·2·3상 단계마다 심사, 미국은 첫 진입 때 한 번 서울 세계 2위 임상도시…'속도 경쟁'에 흔들리는 위상

한국과 미국의 임상시험 승인 기간은 똑같이 '30일'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두 나라의 시스템은 전혀 다른 구조로 움직인다.
임상시험계획 승인신청(IND)은 사람을 대상으로 의약품을 시험하기 위해 규제당국의 심사와 승인을 받는 절차다. 한국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미국은 FDA가 이 제도를 주관한다. 두 기관 모두 신청 접수 후 30일 이내에 승인 여부를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30일이지만 심사 방식은 근본적으로 갈린다. 식약처는 임상 1상, 2상, 3상 각 단계마다 개별 승인을 내준다. 반면 FDA는 임상 1상 진입 시점에만 IND를 제출받는다.
미국의 방식은 절차의 무게중심이 사전 단계에 실려 있다. FDA는 스폰서가 IND를 제출한 뒤 30일 동안 별도 공지가 없으면 임상시험을 그대로 진행할 수 있는 구조다. 대신 사전협의(Pre-IND) 미팅과 2상 종료 후 미팅을 통해 시험약의 안전성과 3상 진입에 관한 조언을 제공한다.
이 사전 단계에 걸리는 시간이 두 나라 통계의 착시를 만든다. 한 식약처 관계자는 과거 국정감사 당시 "미국은 임상시험계획 이전에 pre-IND, 심지어 pre-pre-IND도 있다"며 "미국에서 pre-IND에 제출할 자료 준비 기간만 1년에서 1년 반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는 이런 사전 기간을 제외하고 IND 기간만 30일로 명시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IND 심사가 실제로는 더 걸린 사례도 있다. 최근 3년 기준 식약처의 임상 승인이 가장 늦게 나온 경우는 421일이었고, 임상 1상 승인까지 최대 303일 지체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의 심사 강도도 FDA와 차이가 있다. 식약처가 제출 자료가 미비하다고 판단하면 30일 이내에 개발사에 보완을 요청한다. 보완 자료가 적정하지 않거나 기한 내 제출되지 않으면 IND를 반려한다. 미국은 시험약에 안전성 문제가 없으면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굳이 막지 않는 기조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제도 개편으로 승인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식약처는 2025년 심사 절차를 개편해 전담 심사팀을 구성하고 모듈별 순차심사를 도입했다. 전체 신약 승인 소요 기간을 약 14개월에서 10개월로 단축한다는 목표다. 신속 임상 지원 제도인 GIFT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임상시험의 강점은 인프라와 수행 능력에 있다. 한국은 ICH 회원국이자 세계보건기구(WHO) 지정 규제기관으로 한국의 임상시험 데이터는 미국 FDA와 유럽 EMA에서 인정받는다. 장인진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한 인터뷰에서 "국민의 98%가 국가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어 환자모집이 쉬운데다 세계적인 임상시험 수행능력을 갖춘 대학병원이 많아 글로벌 제약사에겐 매력적인 시장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치로도 위상이 확인된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전 세계 임상시험 점유율은 3.46%로 6위를 기록했다. 미국이 21.15%로 1위, 중국이 14.59%로 2위였다. 도시별 순위에서 서울은 베이징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다만 순위는 하락세다. 한국의 국가 순위는 2023년 4위에서 2024년 6위로 두 계단 내려앉았다. 서울도 2017년 이후 지켜온 도시 1위 자리를 2024년 베이징에 내줬다.
경쟁국의 속도 개편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은 2025년 혁신 신약 IND에 대해 최단 30영업일 내 심사를 완료하는 경로를 도입했다. 요건을 갖추면 1~2개월 걸리던 승인 기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중국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글로벌 상위 11개 제약사가 중국에서 개발된 초기 신약 후보물질 확보에 15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도 초기 임상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규제 혁신에 나섰다. FDA는 신약 후보물질의 최초 인체 대상 임상시험(FIH) 진입 시점을 앞당기는 신속 IND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FDA에 따르면 2025년까지 전 세계 신약의 약 70%가 다른 국가보다 먼저 미국에서 승인됐다. 하지만 초기 임상 분야에서는 중국이 2021년 1상 임상시험 점유율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IND 승인 기간 추가 단축을 요구하고 있다. 김현기 스톤브릿지벤처스 상무는 2025 KoNECT 국제 콘퍼런스에서 "중국은 최근 임상 IND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단축했다"며 "덴마크는 14일 이내에 통보만 하면 되는 식으로 IND 규정을 바꾸기로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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