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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SK플라즈마 두 곳에 원료혈장 공급, 정가 65% 단가 자급률 10년 새 95%→43%, 헐값 논란도 되풀이

국민이 헌혈한 피가 대한적십자사를 거쳐 제약사의 신약 원료로 흘러가는 혈장 공급망을 두고 공공성과 수익성이 맞부딪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와 제약·바이오 업계를 잇는 연결고리는 '혈장분획제제'다. 적십자사는 헌혈로 모은 혈장을 원료로 공급하고, 제약사는 이를 받아 알부민·면역글로불린·혈액응고인자 제제 같은 의약품을 만든다. 선천성 면역결핍질환과 혈우병 치료 등에 쓰이는 국가필수의약품이다.
이 거래 구조는 WHO 원칙에서 출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적십자연맹(IFRC)은 혈액을 자국 헌혈에 의한 자급자족과 상업성 배제 원칙으로 관리하도록 권고해 왔다. 한국 정부는 1978년 혈액 공공관리를 적십자사로 일원화했고, 적십자사는 1991년 충북 음성에 혈장분획센터를 세웠다. 헌혈 혈장의 공공 배분이 적십자사의 핵심 역할이 된 배경이다.
현재 국내에서 혈장분획제제를 생산하는 기업은 GC녹십자와 SK플라즈마 두 곳뿐이다. 적십자사는 이 두 회사에 동결혈장, 신선동결혈장, 성분채혈혈장을 공급한다. 분획제제 산업 전체가 적십자사의 원료 공급에 묶여 있는 구조다. GC녹십자의 2026년 1분기 분기보고서에서도 주요 거래처에 적십자가 포함됐고 혈액제제가 전체 매출의 41.0%를 차지했다.
문제의 핵심은 공급 단가다. 원료혈장은 적십자사를 통해 공급될 때 정가 대비 약 65% 수준의 가격이 적용된다. 분획용 혈장의 공급단가는 재료비·인건비·관리비로 구성된 원가의 65~77% 선에 머물러 있다. 적십자사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국민의 혈액을 판매한다는 지적이 반복돼 온 이유다.
원가 이하 판매는 적십자사의 손실로 누적됐다. 2018년 국정감사에서 적십자사가 6년간 약 500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지적이 나왔고, 2020년 국정감사에서도 5년간 약 477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헌혈자 다수가 자신의 혈액이 적십자사의 사업 수익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비판도 함께 나왔다.
가격 인상도 쉽지 않다. 제약사들은 혈장분획제제에 건강보험 약가 상한액이 설정돼 있어 보험약가 인상이 선행돼야 혈장 가격 인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적십자사가 제약사의 영업 비밀인 원가나 손익 자료를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도 협상을 가로막았다.
제약사 쪽 셈법은 또 다르다. 양사는 혈장분획제제 사업에서 만성 적자를 호소한다. GC녹십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원가보전을 신청하면서 손실액을 2020년 441억원, 2021년 457억원, 2022년 542억원으로 보고했다. 다만 당시 인정된 금액은 20억원에 그쳤다. 원료혈장 값보다 완제품인 혈장분획제제의 약가가 낮아 양사 모두 영업손실을 본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원료 부족은 양측을 동시에 압박하는 변수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헌혈량이 감소했고 의약품 제조용 원료혈장 자급률은 2015년 95.3%에서 2024년 42.9%로 떨어졌다.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국제 혈장 원가가 오르면 생산이 직접 흔들린다. 적십자사의 2025년 헌혈 실적은 283만9632건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인구 구조도 공급 기반을 좁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헌혈 가능 인구는 2023년 3916만명에서 2043년 3066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헌혈 실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10~20대 인구가 출생아 감소로 축소되는 반면 수혈 수요가 많은 고령층은 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을 제도로 풀기 위해 정부가 개입에 나섰다. 2021년 개정된 혈액관리법에 원료혈장 수급 관리 조항이 신설돼 보건복지부 장관이 공급 가격 관리와 배분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적십자사와 제약사 간 협상에만 맡겼던 혈장 가격을 정부가 표준원가 분석을 토대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틀이 바뀐 것이다.
제약사들은 국내의 좁은 수익 구조를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SK플라즈마는 인도네시아 혈장을 원료로 만든 제제를 출하한 데 이어, 튀르키예 적신월사와 합작사를 세워 연간 60만L 규모 생산 시설을 착공했다. 이 프로젝트로 6500만유로(약 11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성과도 거뒀다. 다만 양사의 해외 사업 확대가 국내 수급 불안정을 키운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수출 쏠림에는 제도적 배경이 있다. 국내는 원료혈장부터 완제의약품까지 품질 평가 기준이 까다로운 반면 수출용 수입혈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혈장관리기준 적용을 받지 않아 조달 절차가 간편하다. 국내에서 충분한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제약사들이 해외로 향하는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적십자사와 제약사의 관계는 공공 자원인 헌혈 혈장을 매개로 한 협력이자 가격을 둘러싼 갈등의 양면을 동시에 안고 있다. 헌혈 감소와 자급률 저하가 맞물린 상황에서 원료혈장 가격을 어떻게 현실화하느냐가 양측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BIOBOOK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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