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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 희귀질환 시장의 숨은 노다지 한미약품 '월 1회' 무기로 매일 주사 시대 끝낸다

미국 일라이 릴리가 비만약 제국을 넘어 '장(腸)'으로 전선을 넓혔다.
릴리는 지난 5월 31일 한미약품과 지속형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2(GLP-2) 신약 후보물질 '소네페글루타이드'(개발코드명 HM15912)의 글로벌 개발·제조·상업화 권리를 가져오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한미약품은 1일 이 사실을 공시했다. 총 계약 규모는 12억6000만달러(약 1조8144억원)다.
세간의 시선은 계약금에 쏠렸다. 그러나 이번 거래의 본질은 'GLP-1'이 아닌 'GLP-2'라는 약물 계열 자체에 있다.
GLP-1은 오젬픽·위고비·마운자로로 대표되는 당뇨·비만약의 표적이다.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을 억제해 혈당과 체중을 낮춘다. 반면 GLP-2는 같은 음식물 자극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지만 작용하는 장기가 다르다. 소장 점막세포에 붙어 장을 자라게 하고 영양 흡수 면적을 넓힌다.
두 호르몬은 형제격이다. 음식을 먹으면 소장 말단의 'L세포'에서 GLP-1과 GLP-2가 함께 분비된다. 한쪽이 대사를 조절한다면 다른 한쪽은 장 구조 자체를 키운다.
GLP-2의 약리 기전은 1996년 처음 입증됐다. 소장을 자라게 하는 이 효능이 단장증후군 치료의 열쇠가 됐다.
단장증후군은 수술 등으로 소장의 상당 부분을 잃어 영양을 흡수하지 못하는 희귀질환이다. 환자들은 정맥에 바늘을 꽂아 영양분을 공급하는 비경구 영양요법(TPN)에 의존한다. 하루 대부분을 수액에 묶여 보내는 셈이다.
GLP-2 계열 첫 치료제는 다케다의 '테두글루타이드'다. 2012년 유럽에서 '레베스티브', 같은 해 미국에서 '가텍스'라는 이름으로 승인됐다. 국내에는 2018년 들어왔다.
문제는 투약 부담이다. 테두글루타이드는 매일 피하주사를 맞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환자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한미약품은 여기서 틈을 봤다. 자체 플랫폼 기술 '랩스커버리'로 약효 지속 시간을 늘려 '월 1회' 투여 제형을 만들었다. 매일 30회 가까운 주사를 한 달 한 번으로 줄이는 구상이다.
한미약품은 비임상 연구에서 매일 또는 주 1회 투여하던 약을 월 1회 소네페글루타이드로 바꿨을 때 소장 성장과 흡수력이 오히려 개선됐다고 밝혔다. 투약 횟수는 줄이면서 효능은 끌어올렸다는 주장이다.
규제당국의 인정도 일찍 받았다. 소네페글루타이드는 201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EMA,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각각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2020년에는 FDA 소아희귀의약품(RPD), 2021년에는 패스트트랙 개발 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현재 단장증후군을 적응증으로 글로벌 임상 2상이 진행 중이다.
릴리의 셈법은 단순한 희귀질환 추가가 아니다. 릴리는 GLP-1 비만약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고 지난 4월 경구용 비만약 '파운다요'까지 FDA 승인을 받았다. GLP-1으로 대사를 잡은 릴리가 같은 L세포 호르몬인 GLP-2로 소화기 영역까지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그림이다.
한국을 향한 릴리의 행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릴리는 SK팜테코를 통해 차세대 월 1회 비만약 임상 시료를 생산하고 있다. 장기지속형 주사제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릴리 효과'의 수혜주로 거론돼 왔다.
소네페글루타이드 역시 '월 1회 지속형'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매일 맞는 주사를 한 달에 한 번으로 바꾸는 기술은 비만약이든 희귀질환약이든 릴리가 그리는 큰 그림과 맞닿아 있다.
계약 조건은 한미약품에 유리하게 짜였다. 계약금 7500만달러(약 1080억원)는 반환 의무가 없다. 이후 받게 될 최대 11억8500만달러(약 1조7064억원)의 마일스톤도 반환 의무가 없는 구조다. 계약이 종료돼도 한미약품이 위약금을 물 일은 없다.
다만 변수는 남아 있다. 한미약품은 수익 인식이 임상시험과 품목허가 성공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규제기관 결정으로 개발이 중단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 마일스톤과 로열티의 세부 조건은 양사 합의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GLP-1이 만든 비만약 시장은 2033년 주요 7개국에서 1250억달러(약 17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화려한 무대 뒤에서 GLP-2는 오랫동안 단장증후군이라는 좁은 시장에 머물러 있었다. 릴리의 베팅이 이 형제 호르몬의 위상을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주목된다.

BIOBOOK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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