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임상 승인 책임 민간 이전…사전책임주의 전환 목소리 식약처, 10일 단축안 입법예고…업계 '근본 개편' 요구

국내 신약 개발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근본 원인은 법정 심사 기한이 아니라 규제당국이 모든 안전성 책임을 떠안는 사전책임주의 규제 프레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10월 8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업계와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만순 한국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최근 한국바이오협회 채널을 통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이 인허가 속도를 대폭 앞당기며 글로벌 성과를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이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써서라도 인허가 기관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신약허가신청(NDA)뿐 아니라 IND 승인 속도를 단축해 임상 데이터를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가 유연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국내에서 임상시험에 진입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IND를 제출하고 통상 30일 안팎의 법정 처리 기한을 거쳐야 한다. 다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기간은 이를 훨씬 웃돈다. 심사 과정에서 추가 자료 요구나 보완 통지가 내려지면 시계가 멈추고 보완 완료 시점까지 수개월이 추가로 소요되는 일이 잦다.
심사 지연의 기저에는 임상 실패나 사고 발생 시 심사 담당자와 규제기관이 여론과 사법적 문책을 집중적으로 받는 한국 특유의 행정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이영미 국가바이오혁신위원회 투자전략분과 위원장은 초기 임상 역량과 병원 인프라가 세계적 수준임에도 식약처의 어깨가 지나치게 무거워 제도적 문턱이 낮아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바이오 생태계의 급성장은 과감한 규제 책임 전환에서 출발했다. 중국은 2018년 IND 검토 기간에 60일 묵시적 승인 제도를 도입하며 기존 승인 중심 체계를 이의 제기 기반 체계로 바꿨다. 규제당국이 기한 내 공식 거절이나 보완을 요구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시험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국은 2025년 9월 혁신의약품 임상 승인 검토 기간을 30일로 줄인 데 이어 2026년 의약품관리법 개정을 통해 20영업일 체제로 압축했다.
이 같은 초고속 승인 배경에는 규제 방임이 아니라 철저한 사후 기업 책임제가 있다. 중국은 의약품 시판 허가권자(MAH) 제도를 강력하게 가동해 임상시험과 품목 허가 이후 발생하는 모든 품질·안전사고 책임을 기업과 책임자에게 귀속시키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기업이 천문학적 배상과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하므로 기업 스스로 임상 설계와 데이터 검증을 치밀하게 수행한다는 설명이다.
국내 규제 환경도 변화의 기로에 섰다. 식약처는 사전검토 결과가 적합한 경우 IND 처리 기한을 기존 30일에서 10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은 '의약품 등의 안전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8월 21일 입법예고하고 의견 수렴을 진행해 왔다. 아울러 제약바이오 업계·의료계와 함께 임상시험 제도개선 실무 협의체와 공공-민간 협력 네트워크 플랫폼(ARICTT)을 가동해 종합적인 임상 승인 개선안을 연내 발표할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단순한 처리 일수 감축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지적한다. 사전검토가 완벽히 끝난 극히 일부 과제에만 단축 기한을 적용하는 방식은 현장의 갈증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는 임상시험 참여자 보호와 윤리적 안전망을 빈틈없이 구축하는 동시에 기업이 안전에 대한 전적인 민형사상 책임을 부담하는 대신 규제기관의 사전 심사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유연화하는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2030년 대형 블록버스터 의약품들의 연쇄 특허 만료를 앞두고 후발주자인 국내 기업들이 생존하려면 정부가 쥐고 있는 심사 책임의 빗장을 민간에 넘겨 개발 속도를 극대화하는 결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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