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내년 국산 탄저백신 구매 26억원대 그쳐 에볼라 치료제 예산 전액 삭감…중장기 계획 표류

정부가 생물 테러 대비를 위해 세운 중장기 비축 계획이 예산 삭감으로 표류하고 있다. 내년도 국내 생산 탄저 백신 구매 예산은 26억원대에 그쳤고 에볼라 치료제 확보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백종헌 의원이 질병관리청에서 보고받은 내역을 보면, 2027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영된 국내 생산 탄저 백신 구입 예산은 26억25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생물 테러 발생 시 현장에 투입되는 경찰·소방·군·의료진 등 초동 대응 인력 전체에 접종할 물량조차 채우기 어려운 규모다.
에볼라 치료제 구입비는 2026년 예산에 일부 포함됐으나 2027년 예산안에서는 전액 미반영 처리됐다. 정부가 비축 대상 목록에 품목을 올려두고 초기 예산만 단발성으로 책정한 뒤 사실상 손을 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예산 편성은 정부가 스스로 수립한 중장기 대책과 엇박자를 낸다. 정부는 2025년 4월 제2차 국가비축물자 중장기계획(2025~2029년)을 세우며 국내 생산 탄저 백신 비축과 에볼라 등 고위험 감염병 대비 치료제·백신 비축 확대를 핵심 과제로 규정했다. 그러나 계획 수립 1년여 만에 핵심 과제들이 예산안에서 뒷전으로 밀렸다.
국내 탄저 백신은 질병관리청과 GC녹십자가 28년간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국산 신약 39호 배리트락스주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적용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고 2025년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를 받은 뒤 전남 화순 공장에서 출하 체계를 갖췄다.
탄저균은 포자 형태로 공기 중에 살포되면 치명률이 90%를 넘는 1급 법정감염병 병원체다. 2022년 국방백서는 북한이 탄저균과 천연두, 페스트 등 생물무기를 자체 배양·생산할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했다. 에볼라바이러스도 치명률이 50%에 달하는 최고 등급 고위험 병원체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번 사태가 백신 주권 확보와 필수 공공의약품 산업 생태계에 부정적 충격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생물무기 및 고위험 감염병 대응 백신·치료제는 민간 시장이 사실상 없어 국가가 유일한 구매자다. 제약사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국산화에 성공해도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구매를 줄이면 생산 시설 유지비조차 건지기 어렵다.
GC녹십자는 연간 대량 생산 설비를 마련해 정부 비축 물량 공급을 준비해 왔으나 20억원대 중반 예산으로는 설비 가동 효율을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을 통해 개발부터 국가 비축 물량 구매까지 장기 조달 계약으로 제약사를 뒷받침하지만 국내 조달은 단년도 예산 심의에 종속돼 기업에 리스크를 전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비축물자 관리 부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질병관리청이 비축해 온 항바이러스제는 유효기간 경과로 최근 3년간 357만8000명분, 구매 당시 금액으로 565억7000만원 규모가 폐기 처분됐다. 유효기간 도래 전 순환 사용하는 관리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비축 충족률은 목표치 대비 7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수백억원어치 의약품을 기한 만료로 폐기하면서도 필수 백신과 치료제 예산은 전액 삭감하거나 낮게 배정하는 비효율과 행정 공백이 공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정기국회 예산안 심사에서 감염병 비축 예산 증액과 조달 체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국회 심의에서 예산이 일부 증액되더라도 근본적 제도 개선 없이는 매년 예산 삭감과 조달 불안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단년도 예산 편성의 한계를 극복할 다년도 장기 구매 계약 제도를 도입하고 약가와 비축 기준을 현실화하는 제도적 정비가 선행되지 않으면 백신 자급화 성과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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