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화학요법이 간세포 노화 유발, 휴면 암세포 각성시켜 NET-DNA·CCDC25 차단하면 전이 억제 가능성 확인

암을 죽이기 위해 투여한 항암제가 오히려 잠들어 있던 암세포를 깨워 치명적인 간 전이를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국 톈진의과대학 저우톈싱·하오지후이 교수 연구진은 4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캔서 리서치'에 화학요법이 간세포 노화와 중성구 세포외덫(NET) 형성을 연쇄적으로 유도해 휴면 상태의 췌장암 세포를 활성화하고 간 전이를 촉진하는 분자 메커니즘을 규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췌장관선암은 5년 생존율이 10% 미만인 대표적 난치암이다. 수술과 전신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친 환자조차 80% 이상이 수년 내 재발이나 원격 전이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학요법이 유방암·폐암·대장암 등 여러 암종에서 치료 후 전이 부담을 오히려 키운다는 보고가 이어져 왔지만 그 정확한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휴면 추적 시스템을 활용해 화학요법이 간세포의 노화를 유발하는 첫 단추를 확인했다. 노화된 간세포는 TGF-β를 분비하고 이는 SMAD 의존적 경로를 통해 호중구가 자신의 DNA를 그물처럼 뿜어내는 NETosis를 촉발했다. NET에서 유래한 DNA 조각이 간에 숨어 있던 휴면 파종성 종양세포(DTC) 표면의 수용체 CCDC25와 결합하면 PI3K-AKT 신호가 활성화되고 DTC는 지질이 풍부한 증식성 표현형으로 재프로그래밍됐다.
핵심은 이 연쇄 반응의 어느 고리든 끊으면 전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NET 형성, TGF-β 신호, CCDC25 기능을 유전적·약리적으로 차단하자 DTC 재활성화와 간 전이가 효과적으로 억제됐다. 동시에 화학요법 본연의 항암 효능은 그대로 유지됐다.
임상적으로도 혈청 NET-DNA 수치가 높은 환자군에서 간세포 노화와 DTC 증식이 두드러졌다. 췌장관선암뿐 아니라 여러 고형암에서 NET-DNA 고수치 환자의 생존율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이는 NET-DNA가 간 전이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는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휴면 암세포는 원발 종양에서 떨어져 나와 골수·폐·간·뇌 등 원격 장기에 정착한 뒤 세포 분열을 멈춘 상태로 수개월에서 수십 년간 잠복한다. 분열하는 세포를 표적으로 삼는 기존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에 극도의 내성을 보이기 때문에 종양 제거 후 재발의 '씨앗'으로 불려왔다.
영국 암연구소 비트슨 연구소의 세스 코펠트 박사는 "화학요법 이후 재활성화된 휴면 암세포에 의한 재발암은 매우 공격적이며 다발성으로 퍼져 기존 치료에 강한 내성을 지닌다"며 "이 휴면 상태를 통제하는 것이 전이 연구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연구는 향후 항암 치료 전략에 실질적 변화를 예고한다. 기존 화학요법에 NET 형성 억제제나 CCDC25 수용체 차단제를 병용하는 임상시험이 글로벌 단위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항암제의 암세포 사멸 효과는 유지하면서 전이 부작용만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이중 전략'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휴면 암세포 제어 연구가 활발하다. 9월 8일 열린 국내 의학 학술대회에서 중앙대학교 조재범 교수는 휴면 암세포가 주변 세포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항암치료 스트레스를 견디는 기전을 발표하며 생존 신호 차단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 췌장암이 국가암검진에 포함되지 않아 발견 시 이미 원격 전이가 진행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임상적 의미가 더 크다.
암세포 자체를 죽이는 데 집중하던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노화된 정상 세포와 면역 세포가 암세포에 보내는 각성 신호를 원천 차단하는 방향으로 항암 치료가 진화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혈액 내 NET-DNA 수치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 전이 위험을 사전에 예측하고 선제적 표적 치료를 시행하는 정밀 의료 시대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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