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건보 적자 첫 전환에 산정률 53.55%→45% 의결 중소사 매출 10% 증발 위기, 혁신형 쏠림 가속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2026년 처음으로 적자에 진입하는 가운데 정부가 제네릭 약가를 14년 만에 끌어내리면서 제약업계 수익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3월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제네릭(복제약) 약가 산정률을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현행 53.55%에서 45%로 약 16% 인하하는 '국민건강보험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의결했다. 건강보험 당기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시점에 맞춰 재정 절감 효과가 큰 약가를 정조준한 조치다. 정부는 이 개편으로 2036년까지 약 2조4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건강보험 재정은 구조적으로 적자 전환을 피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보건복지부의 제2차 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르면 당기수지는 2024년 2조6402억원, 2025년 4633억원 흑자를 기록한 뒤 2026년 3072억원 적자로 전환된다.
적자 폭은 의료개혁 비용이 더해지며 당초 전망보다 가팔라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재정운영위원회 전망에서는 2026년 당기수지 적자가 4조1238억원으로 추산됐다. 1년 반 전 정부 전망치인 3072억원과 비교하면 적자 폭이 3조8000억원 넘게 불어난 수치다.
고령화와 고가 신약 등재가 지출을 끌어올리는 구조도 재정을 압박한다. 65세 이상 노인의 1인당 진료비는 전체 평균의 3배를 웃돈다. 다발골수종 등 고가 항암제 급여화는 환자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연간 수천억원의 재정 부담을 새로 안긴다.
약가를 낮추는 일은 정부가 쓸 수 있는 가장 빠른 재정 절감 수단이다. 신약 급여를 직접 건드리기 어려운 만큼 제네릭이 1차 대상이 됐다. 정부는 2012년 일괄 인하 이후 53.55%를 유지해온 기등재 의약품 약 4500개 품목부터 단계적으로 산정률을 끌어내린다.
산정률 16% 인하는 제네릭 매출에 그대로 충격으로 전이된다. 매출원가는 그대로인데 가격만 낮아지므로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한 제약사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도 점진적 약가 인하 정책이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적시됐다.
타격은 기업 규모에 따라 갈린다. 수출과 기술이전, 신약 포트폴리오를 갖춘 대형사는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지만, 내수와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중소사는 생존 문제로 직결된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제네릭 약가가 40%대로 조정될 경우 중소 제약사의 매출 손실률은 10.5%로 추산됐다.
정부는 연구개발(R&D) 투자가 많은 기업에 완충 장치를 뒀다.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에는 각각 49%, 47%의 산정률을 적용하고 특례기간도 각각 4년, 3년 부여한다. 현재 혁신형 제약기업 48곳에 준혁신형이 더해지면 약가 우대 대상은 60여곳으로 늘어난다.
우대 구조가 오히려 양극화를 부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R&D 투자 여력이 부족한 중소사는 혁신형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워 인하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CEOSCOREDAILY에 따르면 수익성 악화로 연구개발 여력이 줄면 혁신형 진입이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업계는 정부 추산을 크게 웃도는 타격을 우려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은 개편안 시행 시 연간 최대 3조6000억원 규모의 산업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신규 제네릭 등재 약가를 40%대로 놓으면 절감 규모가 최대 3조6000억원에 달한다며 상장사 영업이익률이 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R&D나 시설 투자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내 제약산업은 제네릭 수익을 신약 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로 성장해 왔다. R&D 재원의 94%를 기업이 자체 조달하는 만큼 제네릭 수익 기반 약화가 신약 파이프라인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 논리다. 일동제약 윤웅섭 회장은 2026년 새로 시작하는 조직, 채용, R&D 예산을 모두 비상경영에 맞게 바꿨다며 개편안이 사업 지속가능성 문제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수출 협상력 약화 가능성도 변수로 거론된다. 내수 약가가 지나치게 낮아지면 해외 파트너십 협상에서 참조 가격으로 활용돼 수출 가격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기술수출을 확대 중인 국내 기업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소비자 단체는 오히려 인하 폭과 속도가 미온적이라고 반발한다. 의약주권 환자·소비자연대는 10년에 걸친 유예 기간이 시장 구조 개편을 사실상 무기한 지연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제네릭 약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17배 수준이라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기등재 의약품 약가 조정은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착수된다. 일반 제약사는 2029년, 혁신형·준혁신형 기업은 2032~2036년에 최종 산정률 45%에 도달한다. 재정 건전성과 산업 경쟁력 사이의 균형점을 어디에 둘지가 향후 제약·바이오 업계 실적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 내용은 정책·산업 분석으로, 개별 종목의 투자 판단 근거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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