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공급망 재편 기대는 컸지만 수주 전환엔 시차…기업별 온도차 뚜렷 유전체 분석까지 전선 확대, 대형사·중소형사 희비 갈려

미국이 중국 바이오 기업을 공급망에서 밀어낸 지 약 5개월이 지났지만, 국내 기업들의 수주 성과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온도차를 드러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8일(현지시각)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포함된 2026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했다. 2년여에 걸친 입법 과정을 마무리한 이 법안은 미국 연방정부가 지정하는 '우려 바이오기업'과의 조달·계약·보조금 거래를 전면 차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 발효 후 1년 이내에 관리예산국(OMB)이 우려바이오기업 명단을 공표해야 하는 구조다. 중국 최대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우시앱텍(WuXi AppTec)과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 세계 최대 유전체 분석 기업 BGI(베이징유전체연구소)와 자회사 MGI 테크 등이 타깃으로 거론된다.
시장의 기대는 단순했다. 글로벌 바이오 CDMO 시장의 7~10%를 점유하는 우시바이오로직스가 빠지면, 트랙레코드와 생산능력을 갖춘 삼성바이오로직스·셀트리온·롯데바이오로직스 등 국내 기업으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실제 흐름은 기대보다 느리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올해 1분기 기준 누적 위탁생산(CMO) 수주 금액이 214억 달러(약 30조8000억원)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인 2025년 4분기 대비 증가폭은 2억 달러에 그쳐 시장에서는 '수주 확보 소식에 목마른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4년 수주액 55억 달러, 2025년 68억 달러로 연간 수주 규모 자체는 꾸준히 커지고 있으며 회사는 기존 매출 가이던스인 전년 대비 15~20% 성장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에 위치한 휴먼지놈사이언스(HGS) 생산 시설을 약 4136억원에 인수하며 현지 거점을 확보했다. 6만 리터 규모의 원료의약품(DS) 생산 능력을 갖춘 이 시설의 매출 인식은 3분기경 본격화될 전망이다. 키위움증권 허혜민 연구원은 "락빌 캐파는 현재 가이던스에 미포함 상태로 3분기 매출 인식 본격화 시 가이던스 상향 여지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셀트리온은 올해 1월 일라이 릴리(Eli Lilly)로부터 미국 뉴저지주 브랜치버그(Branchburg) 공장 개소식을 열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셀트리온 측은 "미국 현지에서의 대응 체계를 단기뿐 아니라 중장기 전략까지 준비함으로써 어떠한 관세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없도록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초 관세 리스크 방어용으로 추진된 인수였지만, 생물보안법 발효와 맞물리며 CDMO 사업 확장의 기반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 공장에 항체·약물접합체(ADC) 생산시설까지 준공하며 새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ADC 분야 CDMO 수요는 전년 대비 35% 이상 증가가 예상된다. 에스티팜은 올리고핵산(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원료의약품 분야에서 이미 글로벌 상위 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국 기업이 납품하던 원료의약품 공급계약을 올해에만 두 차례 체결하며 생물보안법 반사이익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소형 CDMO 기업 바이넥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실사를 통과하고, 바이오의약품 개발 기업과 단일 품목에 대한 175억원 규모 시험생산(PPQ)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난해 매출액의 11%에 달하는 수준이다. 보령과 경보제약(종근당홀딩스 자회사)도 각각 CDMO 사업 자금 조달과 ADC 공장 신설에 나서며 시장 진입을 타진하고 있다.
유전체 분석 전선도 달아올랐다. 법안 발효로 BGI와 MGI 테크의 미국 연방 기관 납품이 사실상 차단되면서 마크로젠의 미국 법인 소마젠과 AI 기반 희귀질환 진단 기업 쓰리빌리언이 수혜주로 부상했다. 소마젠은 이미 미국국립보건연구원(NIH), 마이클 J. 폭스 재단 등으로부터 수주를 확대하고 있다. 쓰리빌리언은 미국 텍사스주에 임상검사실(CLIA랩)을 구축하고 하반기부터 매출을 발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쓰리빌리언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과 달리 AI 정확도 99.5%를 경쟁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만 기회가 곧바로 수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는 "생물보안법 발효의 파급효과는 미국 외 해외에 진출한 기업이나 다국적 민간 제약회사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에는 제한적"이라며 "미국 정부와 계약을 추진하는 기업에는 공급망 내 우려바이오기업 포함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인도, 일본, 유럽 기업 간 수주 경쟁이 가열되는 것도 변수다. 삼성증권은 "2026년 6월부터 해당 기업과의 직접 계약이 금지되면 글로벌 제약사들의 공급망 다변화 수요가 집중될 것"이라며 "규제 리스크 회피를 위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선제적 파트너 교체가 국내 기업 수주잔고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수주 문의가 전년 대비 100%가량 늘었다고 알려진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달리, 생산 인프라와 글로벌 트랙레코드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형 CDMO 기업들이 실질적인 수주를 따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중국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미국 내 시장 공백을 차지하기 위한 한국, 인도, 일본, 유럽기업들의 경쟁이 더 가열될 전망"이라며 "민간과 정부가 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부가 정책·금융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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