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현지 공장 확보한 기업은 '방어막', 수출 의존 중소형사는 속수무책 바이오시밀러·혈장제제 유예 1년…'재검토' 조항이 최대 변수

트럼프 행정부의 의약품 관세 충격파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를 강타하면서, 기업 간 대응 역량의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2일(현지시각)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거나 약가 인하 협상을 거부한 수입 특허 의약품에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한국산 의약품에는 기존 한미 무역협정을 적용해 15%의 별도 관세율이 책정됐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와 제네릭(복제약)은 1년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이후 재검토 조항이 붙었다.
5월 현재 업계의 주요 관심은 1년 뒤 재검토 시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는 "바이오시밀러 유예가 끝나는 시점의 관세 수준이 한국 기업 사업 구조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핵심 변수"라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청했다.
이번 관세 조치가 현실화되면서 미리 현지 생산 거점을 확보한 기업과 수출 의존 구조를 유지한 기업 사이의 명암이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말 일라이 릴리로부터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공장을 인수해 이달 전 라인 가동에 들어갔다. 회사는 현지 생산 제품이 본격 출하되기 전까지 미국에 입고된 약 2년 치 공급 물량으로 관세 없이 판매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어떠한 관세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없도록 대응 체계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브랜치버그 공장 생산능력을 현재 6만6000리터에서 14만1000리터로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2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으로부터 메릴랜드주 락빌 공장을 2800만 달러(약 410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올해 1분기 중 인수 절차를 완료했다. 락빌 시설은 6만 리터 규모의 원료의약품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인수 시점부터 기존 CMO(위탁생산) 물량을 그대로 인계받아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여서 초기 손실 없이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송도와 락빌을 연결하는 이원화 생산체계를 통해 북미 고객에게 공급 유연성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중형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미국 상품명 엑스코프리)'에 대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소재 CMO 기업과 계약하고 식품의약국(FDA) 실사까지 마쳤다. 필요할 경우 즉시 현지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것이다. 관세 시행에 대비해 약 1년 치 재고도 선제적으로 확보해 두었다.
GC녹십자는 미국에서 판매 중인 면역글로불린 제제 '알리글로'가 이번 관세 적용 품목에서 제외된 혈장분획제제로 분류돼 직접적인 타격을 피했다. 알리글로는 올해 1분기 349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동기 대비 약 4배 증가했으며, 올해 전체 목표는 1억5000만 달러(약 2160억 원)로 제시됐다.
유한양행은 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미국 판권을 파트너사 존슨앤존슨 자회사 얀센이 보유하고 있어 원료부터 완제까지 얀센이 주관하는 구조다. 유한양행은 미국 순매출 대비 로열티만 수령하는 방식이어서 관세 영향이 사실상 없는 계약 구조를 갖추고 있다.
관세 충격에 상대적으로 노출된 곳은 중소형 신약 수출 기업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지 공장을 지을 자본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15%든 25%든 관세가 실제 부과될 경우 수익성이 직격탄을 맞는다"며 "유예 기간을 활용해 공급망 재편에 나설 수 있도록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시러큐스 바이오캠퍼스의 생산능력(4만 리터)을 기반으로 글로벌 제약사와 CMO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 국내 송도에는 12만 리터 규모의 1공장을 2026년 완공, 2027년 상반기 상업 생산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현지 공장 보유로 관세 리스크를 직접 피하는 동시에 리쇼어링 수요까지 흡수하겠다는 전략이다.
대웅제약과 휴젤은 보툴리눔 톡신 완제의약품을 미국 파트너사에 공급하는 계약 구조상 관세 책임이 현지 파트너 측에 귀속돼 직접 영향이 제한적이다.
관세 정책이 K-바이오 전체에 드리운 공통 변수는 바이오시밀러 유예 종료 시점이다. 셀트리온·삼성바이오에피스 등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 중인 스텔라라·엔브렐·옵디보 바이오시밀러 등에 관세가 적용될 경우, 현지 생산 기반 없이 한국산 제품을 수출하는 구조로는 가격 경쟁력 유지가 어려워진다. 정윤 제약바이오산업전략연구원장은 "수출 비중이 높은 대형 기업들은 현지 생산시설 확보로 준비를 마쳤지만, 그 외 기업들의 타격은 불가피하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대미 의약품 수출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17억8000만 달러(약 2조5600억 원)로 국내 주요 수출국 가운데 최대 규모다. 트럼프 행정부는 120~180일의 유예 기간을 부여했으며, 미국 내 생산 이전 계획을 발표한 제약사에는 20%의 낮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리쇼어링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자국 내 판매 의약품 가격을 최혜국 수준으로 낮출 경우 관세가 면제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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