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구주주 청약률 104%로 전액 납입, 10월 12일 신주 상장 예정 연매출 10억원대 기업이 200억원대 손실 감수하며 CRISPR 원천특허 3파전 지속

유전자 가위(CRISPR-Cas9) 원천기술 기업 툴젠이 194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 납입을 완료했다. 9월 28일 전자공시에 따르면 기명식 보통주 77만7000주가 주당 발행가 기준 총 194억6385만원에 발행됐고, 예정 물량과 실제 발행 물량이 정확히 일치했다. 신주는 10월 12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될 예정이다.
이번 증자가 주목받는 이유는 조달 자금의 사용처에 있다. 연간 매출 10억원 안팎에 불과한 이 회사가 확보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신약 연구개발(R&D)이 아닌 글로벌 CRISPR 유전자 가위 원천특허 소송 비용으로 배정했기 때문이다. 바이오 기업의 유상증자 자금이 '소송비'에 우선 투입되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툴젠의 핵심 자산 자체가 원천특허인 만큼 특허 방어가 곧 기업 존속과 직결되는 구조다.
구주주 청약률 104%, 시장은 왜 응했나
이번 유상증자는 5월 15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됐다. 9월 18일 구주주 청약에서 104.54%의 초과 청약률을 기록했고, 초과청약 뒤 발생한 단수주 1806주는 대표주관회사가 자기 계산으로 인수했다. 실권주가 사실상 발생하지 않은 셈이다.
연간 2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내는 기업에 기존 주주들이 100%를 넘는 청약률로 응한 것은 단순한 재무 지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이 반응한 것은 툴젠이 보유한 CRISPR-Cas9 원천특허의 잠재적 가치, 그리고 이를 둘러싼 글로벌 분쟁의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다.
매출 10억원, 손실 200억원…특허가 유일한 승부처인 이유
툴젠의 재무구조는 일반적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잣대로 평가하기 어렵다. 연간 매출이 약 10억원 내외인 반면, 글로벌 특허 소송 유지 비용과 임상 연구개발비로 매년 200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에 조달한 194억원이 1년치 손실 규모와 거의 맞먹는다는 점은, 이 자금이 단기 운영이 아니라 특정 전략적 목표에 집중 투입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 전략적 목표가 바로 CRISPR-Cas9 원천특허 분쟁이다. 현재 툴젠은 미국 브로드연구소(MIT·하버드대), UC버클리 연구진과 함께 글로벌 유전자 가위 특허의 3대 축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 특허청(USPTO)의 저촉심사(Interference)를 비롯해 주요국에서 특허 우선권을 다투는 이 분쟁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으며, 법적 비용만으로도 중소 바이오 기업의 재무를 압박할 수준이다.
바이오 업계에서 유상증자 자금의 최우선 사용처로 소송비를 명시한 것은 흔치 않다. 그러나 툴젠의 기업가치가 파이프라인 매출보다 원천기술 특허권에 압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인 만큼, 특허 방어 실패는 곧 밸류에이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194억원의 조달은 R&D 투자가 아니라 핵심 자산 자체를 지키기 위한 방어 비용인 셈이다.
파이프라인도 한 발짝 전진, 심혈관질환 치료제 비임상 진입
특허 소송에만 매몰된 것은 아니다. 툴젠은 9월 3일, 진에딧바이오(GenEditBio)와 공동 개발 중인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ASCVD) 생체 내(in vivo) 유전자교정 치료제 'TGT-002'가 비임상시험관리기준(GLP) 독성시험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GLP 독성시험은 임상시험 신청 전 마지막 비임상 관문으로, 이를 성공적으로 통과하면 글로벌 임상 진입이 가시화된다.
이 진척은 툴젠이 '특허 보유 기업'에서 '유전자 치료제 개발사'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구체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다만 GLP 독성시험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되며, 통과 후에도 각국 규제 당국의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이라는 별도의 허들이 남아 있다. 치료제 매출이 실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10월 12일 신주 상장, 단기 오버행 부담은 불가피
10월 12일 신주 77만7000주가 상장되면 기존 유통 주식 수 대비 일정 비율의 물량이 시장에 추가로 풀린다. 유상증자에 참여한 주주들이 단기 차익 실현에 나설 경우, 일시적인 주가 하방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른바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이슈다.
다만 구주주 청약률이 104%를 넘었다는 사실은 기존 주주 상당수가 지분 희석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가 투자를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상장 직후 곧바로 매도에 나설 가능성은 순수 투기 목적의 공모 참여자보다는 낮을 수 있으나,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변수다.
승패를 가를 세 가지 변수
이번 유상증자 완료 이후 툴젠의 기업가치를 결정할 핵심 변수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글로벌 CRISPR 원천특허 분쟁의 최종 결과다. 미국 저촉심사와 각국 항소 절차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거나 합의를 이끌어내면, 전 세계 유전자 치료제 시장에서 로열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반대로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회사의 재정 안정성과 연구 지속 가능성이 크게 제한된다. 향후 1~2년 내 주요 판정이 예상되지만 정확한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다.
둘째, TGT-002를 포함한 파이프라인의 임상 진입 여부다. 비임상 단계에서 임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바이오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지만, 독성시험 실패나 규제 지연의 가능성도 상존한다.
셋째, 추가 자금 조달의 필요성이다. 194억원은 1년치 영업손실에 근접하는 규모다. 특허 소송이 장기화되거나 임상 비용이 본격적으로 발생하면 추가 증자나 외부 투자 유치가 불가피할 수 있으며, 이는 다시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으로 이어진다. 이번 증자에 응한 주주들이 다음번에도 같은 신뢰를 보여줄지는 결국 특허 분쟁과 파이프라인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

BIOBOOK TEAM
biobookmedia@bi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