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기존 204명·48주에서 360명·72주로 규모 대폭 확대, 식약처 보완 요청 수용한 '적응적 설계' 전환 조건부 허가 심사 병행 중…임상 성공 확률 높이되 상용화 시점은 지연 불가피

삼성제약이 진행성 핵상 마비(PSP) 치료제 'GV1001'의 국내 임상시험 설계를 전면 수정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다시 제출했다. 당초 제출했던 3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자진 취하한 뒤, 불과 5일 만에 2b/3상 적응적 설계로 바꿔 변경승인을 신청한 것이다. 대상 환자 수는 204명에서 360명으로, 투여 관찰 기간은 48주에서 72주로 대폭 늘어났다.
이번 변경은 식약처가 기존 3상 신청에 대해 선행 2a상 데이터와 세부 설계에 보완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제약은 보완 요청을 수용하면서 임상 규모를 키우고 용량군을 추가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PSP는 전 세계적으로 승인된 근본 치료제가 없는 희귀 신경퇴행성 질환이어서 개발 성공 시 파급력이 크지만, 회사 스스로도 최종 허가 확률이 통계적으로 약 10%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어 불확실성 역시 높다.
식약처 보완 요청이 임상 설계를 바꿨다
삼성제약은 9월 23일 기존 3상 IND를 자진 취하하고, 28일 2b/3상 적응적 설계로 재신청했다. 적응적 설계란 임상 도중 중간 분석 결과에 따라 용량·환자 수·평가 기준 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방식이다. 기존 3상이 0.56mg 단일 용량으로 설계됐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0.56mg과 1.12mg 두 가지 용량을 피하 투여해 최적 용량을 탐색한 뒤 3상으로 확장하는 구조를 택했다.
식약처가 어떤 항목에서 보완을 요청했는지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선행 2a상에서 확인한 0.56mg의 질환 지연 효과만으로는 3상 진입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제약 측도 "선행 2a상보다 더 확실하고 강화된 임상적 의의를 도출하기 위해 적응적 설계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360명·72주, 규모 확대가 의미하는 것
변경된 임상은 다기관·무작위배정·이중 눈가림·위약 대조 방식으로 진행된다. 1차 유효성 평가지표는 베이스라인 대비 72주 시점의 PSPRS(PSP 평가척도) 총점 변화량이다. 2차 평가 항목으로 인지기능, 일상생활 수행능력, 전반적 임상증상 악화에 대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한다.
대상 환자가 204명에서 360명으로 76% 늘고, 관찰 기간이 48주에서 72주로 50% 연장된 것은 통계적 검정력을 높이려는 조치다. PSP처럼 진행 속도가 빠른 질환에서는 위약군과의 차이를 충분히 확인하려면 관찰 기간이 길어야 한다. 규제기관과 기관 IRB 승인일로부터 약 50개월간 시행될 예정이지만, 회사 측은 시험대상자 등록 속도에 따라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서울대학교병원 운영 보라매병원을 비롯한 7~9개 국내 주요 의료기관에서 우선 환자 모집과 투약이 시작되며, 이후 다국가 임상으로 확대될 계획이다.
GV1001, 항암제에서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제로
GV1001은 원래 젬백스앤카엘이 췌장암 등 항암제로 개발하던 텔로머라제 유래 펩타이드 물질이다. 이후 알츠하이머병을 거쳐 현재는 PSP 치료제로 개발 방향이 전환됐다. 삼성제약은 2025년 12월 젬백스앤카엘로부터 한국·일본·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4개국의 GV1001 판권을 총 2,200억 원 규모에 이전받아 임상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확보했다.
PSP는 비정형 파킨슨 증후군의 일종으로, 뇌 신경세포에 비정상적인 타우 단백질이 축적돼 보행 장애, 안구 운동 장애 등을 유발하며 진행이 빠르다. 전 세계적으로 근본 치료제가 없어 미충족 의료 수요가 극도로 높은 질환이다. GV1001은 미국 FDA와 유럽 EMA로부터 PSP 대상 희귀의약품(Orphan Drug) 지정을 받았는데, 이는 허가 심사 우선권과 시판 후 독점 기간 등 규제상 혜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건부 허가와 2b/3상, 두 트랙의 교차점
삼성제약은 이번 2b/3상 재신청과 별도로, 2026년 1월 식약처에 GV1001의 품목 조건부 허가를 신청해 현재 심사를 받고 있다. 조건부 허가는 임상 데이터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심각한 질환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있을 때 조기 시판을 허용하는 제도다.
두 트랙이 병행되는 구조는 기업 입장에서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이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판단을 요구한다. 조건부 허가가 먼저 나올 경우 조기 매출이 가능하지만, 이후 2b/3상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반대로 2b/3상이 성공하면 정식 품목허가로 이어져 시장 지위가 공고해진다.
성공 확률 10%, 남은 변수들
삼성제약 스스로 임상시험 약물이 최종 허가받을 확률이 통계적으로 약 10%라고 밝힌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는 일반적인 신약 개발 성공률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PSP처럼 치료제가 전무한 영역에서는 규제기관이 유연한 허가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도 있어 단순 비교는 어렵다.
적응적 설계 도입은 중간 분석을 통해 비효과적인 용량군을 조기에 탈락시키고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360명의 PSP 환자를 모집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PSP는 유병률이 10만 명당 5~7명 수준의 희귀질환이어서 국내만으로는 충분한 환자 확보가 어렵고, 다국가 임상 확대가 사실상 필수적이다.
임상 완료까지 최소 50개월, 즉 4년 이상이 소요되며 등록 지연 시 더 늘어날 수 있다. 당초 3상 계획보다 규모와 기간이 커진 만큼 소요 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2,200억 원 규모의 판권 이전 비용을 이미 부담한 상태에서 추가 임상 비용까지 감당해야 하는 삼성제약의 재무 여력도 지켜봐야 할 변수다.
식약처의 이번 변경승인 심사 결과, 조건부 허가 심사의 진행 경과, 그리고 다국가 임상 확대 시 해외 규제기관의 반응이 GV1001의 향방을 결정할 핵심 관문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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