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cy & Regulation
필수 의료기기 수가 저평가 구조 2027년 상반기 개선안 마련 목표

보건복지부가 9월 9일 '의료기기(치료재료) 제도개선 협의체'를 공식 출범시켰다. 산업계·의료계·전문가·정부기관이 한 테이블에 앉아 필수 의료기기의 공급 안정화와 적정 보상 체계를 논의하는 구조로, 2027년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이번 협의체 출범의 직접적인 배경은 2019년 '고어 사태'다. 미국 다국적 기업 W.L. 고어(Gore)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HIRA)이 책정한 소아 심장수술용 인공혈관의 보험 수가가 원가 보전조차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이로 인해 소아 심장병 환아들의 수술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정부가 긴급 가격 인상 협상에 나서고 나서야 공급이 재개됐다.
핵심은 한국 건강보험 수가 구조의 구조적 문제
고어 사태는 단발성 사고가 아니다. 한국의 건강보험 가격 책정 방식은 신제품에 기존 유사 제품의 최저가를 적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품종 소량 생산되는 필수 의료기기는 이 구조 아래에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다국적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유지 동기가 사라진다. 미국 국제무역청(USITA)도 "한국의 엄격한 건강보험 가격 책정 제도는 프리미엄 의료기기의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의 의료기기 시장 규모는 약 75억 달러(약 10조 원) 수준이며, 미국산 의료기기가 전체 수입 시장의 27% 이상을 차지한다. 첨단 의료기기일수록 해외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수가 저평가가 반복될 경우, 공급망 불안정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
AI 의료기기는 새로운 변수
복지부가 이번 협의체를 통해 해결하려는 또 다른 과제는 AI·디지털 의료기기에 대한 보험 등재 체계다. AI 의료기기는 기존 하드웨어 중심의 수가 체계로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한국의 AI 헬스케어 시장은 2023년 3억 7,700만 달러에서 연평균 50.8% 성장해 2030년 66억 7,2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평균 성장률(41.8%)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한국은 전자의무기록(EMR) 보급률 90% 이상에 전국민 단일 건강보험 체계를 통해 3조 건 이상의 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AI 의료기기의 실증과 개발 환경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삼정KPMG는 "해외 의료기기 업체들은 한국 기업과의 파트너십이나 M&A를 통해 시장 진출 및 시너지 창출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협의체는 의사결정기구가 아닌 의견수렴·논의기구로 운영된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 공급자 단체 3곳, 대한의사협회 등 수요자 단체 3곳, 전문가 3명, 정부기관 4곳이 참여하며, 위원장은 민간 전문가 중 호선으로 선정한다. 매달 1~2회 주제별 의견 수렴을 진행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의체가 2027년 상반기까지 도출할 개선안에 주목하고 있다. 대체 불가능한 희소·필수 의료기기에 대해 상한 금액을 유연하게 인상하거나 약가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패스트트랙 보상 인센티브'가 도입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AI·디지털 치료기기에 대해서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의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건강보험 수가 카테고리가 신설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협의체가 의사결정 권한 없이 의견 수렴에 그치는 구조인 만큼,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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