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Original

바이오 USA서 확인한 한국 바이오의 과제…“이젠 기술만으론 부족하다”
글로벌 바이오·제약 박람회인 ‘2026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바이오 USA)’가 지난주 막을 내렸다. 올해도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참가자를 기록하며 높은 관심을 입증했다.
바이오북의 조영우 박사와 김예린 박사는 이번 행사 기간 동안 30건 이상의 개별 미팅을 소화하고 주요 발표 세션에 참석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두 전문가가 체감한 올해 바이오 USA의 변화는 분명했다. 투자 분위기부터 전시 구성, 글로벌 파트너들의 관심 분야, 그리고 한국 바이오가 보여준 현장의 모습까지, 곳곳에서 산업 지형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올해 바이오 USA 미팅 세션의 특징은?
가장 먼저 눈에 띈 변화는 VC 등 재무적 투자자의 존재감이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수년 전만 해도 미국 바이오 전문 VC와의 미팅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성사되곤 했지만, 올해는 VC 참여율 자체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이는 글로벌 고금리 기조에 따른 초기 투자시장 위축, 미국 제약바이오 규제와 정책 리스크, 투자심리 전반의 보수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만큼 바이오 USA는 점차 재무적 투자자보다 제약회사와 바이오텍 기업들이 직접 사업 기회를 찾는 무대로 재편되는 분위기다.
컨설팅 회사들의 존재감이 줄어든 것도 인상적이었다. 과거에는 라이선스, 인증, 규제 대응, 사업개발 전략 등 전문 영역의 자문·업무 제휴를 희망하는 업체들의 미팅 요청과 이들 기업이 운영하는 전시 부스가 적지 않았지만, 올해는 관련 플레이어 수 자체가 감소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배경에는 서비스 통합 추세가 있다. 예를 들어 CRO가 인증·규제 컨설팅 업체를 인수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독립 컨설팅 기업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 여기에 AI 활용 확산도 하나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컨설팅 기업이 수행하던 조사, 문서 정리, 시장 정보 가공, 초기 전략 수립 같은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이제 AI를 통해 더 저렴하고 빠르게 대체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고도의 전문성과 책임이 필요한 영역까지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행사 현장에서 독립 컨설팅 기업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배경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행사장 분위기는 어떠했나?
전체 참가자 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지만, 발표 세션 참석자는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었다. 많은 참가자들이 연사의 인사이트를 청취하는 것보다 개별 파트너링 미팅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정보 획득보다 실질적인 사업 논의와 연결 가능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전시 부스 구성에서도 흥미로운 차이가 관찰됐다.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3개국은 바이오벤처 중심의 국가관 형태로 부스를 운영하며 유망 스타트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반면 미국·유럽·중동·남미 등 다른 지역 국가들의 경우 CRO, CDMO 등 서비스 제공업체 중심으로 국가관 부스가 구성된 사례가 많았다.
이는 각 지역 바이오 생태계의 현재 위치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망 기술과 벤처 발굴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다른 지역은 이미 형성된 산업 수요를 바탕으로 개발·생산·임상 등 실행 역량을 제공하는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파트너들은 무엇에 주목했나?
이번 행사에서 만난 글로벌 파트너들의 반응을 종합하면, 시장의 관심은 예전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검증되지 않은 First-in-class 기술에 대한 기대보다는, 업사이드가 다소 제한적이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best-in-class 기술이나 repurposing drug(약물 재창출) 같은 접근법에 더 높은 관심을 보이는 분위기였다.
이는 투자와 사업개발 모두에서 리스크를 낮추려는 기조가 강해졌다는 뜻이다. 기술의 혁신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임상 개발의 불확실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팅 현장에서는 임상 2상 이후 단계의 기술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한층 강해진 것으로 느껴졌다.
결국 초기 단계 기술을 가진 기업들에게는 단순히 ‘새롭다’는 메시지만으로 글로벌 파트너를 설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술의 차별성은 기본이고, 개발 리스크를 얼마나 관리했는지, 사업화 가능성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부스에서 드러난 또 다른 한계
이번 행사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미국에서 열린 글로벌 행사장 한복판의 한국 부스에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진행되는 세션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장을 지나던 해외 참가자들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청중석 역시 대부분 한국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반면 중국이나 일본 측 세션은 발표자의 영어 발음이 완벽하게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영어로 발표를 이어가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그 결과 지나가던 참가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세션을 둘러서서 듣는 장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무대에서 누구를 상대로 말하고 있는가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한국 부스가 한국 기업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내부 행사처럼 보이는 순간, 그 공간은 더 이상 글로벌 비즈니스 접점이 아니라 국내 네트워킹 공간으로 축소된다. 해외 참가자에게 열려 있는 메시지와 형식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발표도 기회의 문을 넓히기 어렵다.
한국 바이오가 마주한 현실
이번 바이오 USA를 통해 확인한 한국 바이오 생명과학 산업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국내 자본시장의 한계, 기업들의 사업화 준비 부족, 비효율적인 IR, 정부 부처별로 분절된 행정지원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온 문제들이다. 그러나 이번 현장에서 더 분명히 느껴진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여전히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이슈를 관통하는 말은 결국 ‘역지사지’일 것이다. 내 기술을 사줄 파트너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투자자가 궁금해할 지점을 먼저 정리해보는 것, 지원기관이라면 실제 기업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부터 다시 묻는 것이 출발점이다.
좋은 기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글로벌 파트너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그 기술이 어느 단계까지 검증됐는지, 어떤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지, 어떤 리스크가 남아 있는지를 먼저 본다. 이제 한국 바이오도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느냐’보다‘상대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시점이다.
새집을 짓기 위한 기초공사
비가 새는 집은 방수도료를 덧바르는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면 결국 새로 집을 짓는 수밖에 없다. 한국 바이오 산업 역시 부분적 보완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흩어진 정보를 모으는 일이다. 각 부처, 각 지역 클러스터, 각 지원기관에 분산돼 있는 기업 정보와 기술 정보를 통합하고, 이를 글로벌 투자자와 제약사의 관점에 맞게 가공해 손쉽게 검색하고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으로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새집을 짓는 기초공사다.
정보가 모이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거래가 일어난다. 한국 바이오가 글로벌 시장에서 다시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못지않게, 기술을 보여주고 설명하고 연결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번 바이오 USA는 그 필요성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보여준 현장이었다.

Soonjae Hong
soonjae.hong@biobook.co.krBIO USA 2026 Session Overview ②